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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철 폭우가 쏟아졌다.

지하철 공사를 한다고 안양천변의 제방을 싹둑 잘라 버렸다. 폭우로 넘친 물이 그곳을 통해 양평동을 덮쳤다. 주민들은 날 벼락을 맞았다.

양평동 주민들은 죽을 맛이다. 소송을 한단다. 힘 센 건설업자들과 싸우는데 얼마나 힘이 들까. 힘없는 양평동 주민들이 너무 가엾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은 힘없는 양평동 주민뿐인가.

힘 센 당국이나 건설업자가 강대국이라면 양평동 주민은 약소국인가. 강대국에 대항해 힘없는 국가가 버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의인가, 명분인가. 대의와 명분이 불의를 이길 수 있는가. 강자의 부당한 요구에 허물어지는 약자들의 운명이 슬프다.

이 나라의 역사를 배우면서 기분이 나쁜 것은 우리는 늘 당하고만 살았다는 부끄러움과 분노였다. 단군께서는 왜 하필 한반도에 나라를 세워 후손들이 약자의 서러움을 절절히 겪으면서 살도록 했느냐는 부질없는 원망이다.

역사학자는 아니더라도 국민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지지리도 못나게 당하고만 살아 온 역사라는 것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라고 하지만 설마 ‘빛나는 역사’라고는 하지 못하겠지. 그러나 늘 반만년 역사를 들먹인다. 자랑할 것은 나이 뿐인가.

강대국한테 당하고만 살아 온 반만년 역사가 자랑스러운가. 아직도 이 눈치 저 눈치 남의 눈치만 보며 살아가는 것이 자랑스러운가. 정당한 의지가 강자의 부당한 의지 앞에 힘없이 꺾기는 것이 타협의 미덕으로 대견스러운가. 침통하다.

잠시 우리의 역사를 한번 되돌아보자.

대국이라고 불렀던 중국과 사악하기 그지없는 일본이라는 섬나라. 그 틈바구니에서 발 뻗고 잠잘 날이 없던 우리의 역사는 한 마디로 불쌍한 백성의 한 많은 역사였다. 눈물이 난다.

제대로만 지켜 냈다면 지금 쯤 큰 소리 치며 살았을 드넓은 저 만주 땅이야 죽은 자식 뭐 만지기지만 나중에라도 정신만 바짝 차렸으면 세상에 수모란 수모를 다 겪으며 이렇게는 살지 않았을 것이다.

‘한반도’라는 영화를 봤다. 일본의 낭인이란 무뢰한들이 궁중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장면을 두 눈 부릅뜨고 보았다. 낭인의 닛본도가 황후의 목을 치고 시뻘건 피가 튀었다. 그 피가 마치 내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몸서리 친 것은 나뿐이었을까. 일본 낭인들의 더러운 발자국이 궁궐을 더럽힌 치욕을 조상들이 모른다면 뻔뻔스럽다. 치욕의 역사다.

인간은 과연 얼마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 갈 수 있는가.

문득 지나 온 역사와 오늘의 역사를 보면서 진정 대한민국의 의지는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한다. 한반도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를 생각한다.

격변하는 세계 속에서 힘없는 나라와 강대국 사이에 과연 정의라는 것은 존재하며 약자의 의지는 바람 앞에 촛불이 아닌가를 생각한다.

이라크의 하늘을 덮는 포연 속 무너진 벽돌더미 아래 피범벅이 되어 쓰러져 숨져가는 어린이들은 왜 자신들이 죽는지 아는가. 레바논을 공격하는 이스라엘 탱크의 굉음은 과연 정의인가 학살인가. 강자는 항상 정의이고 약자는 어굴하고 부당해도 불의인가.

‘코피아난’ 유엔사무총장은 이스라엘에게 레바논 공격을 중지하하고 했다. 이스라엘은 한 마디로 거부했다. 남은 것은 강자의 의한 약자의 죽음뿐이다.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전쟁에서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 갈 것이다. 우리도 그랬다.

문득 한국전쟁과 노근리 사건이 떠오른다. 아무 죄도 없는 농민들 200여명이 1950년 7월26일 미군의 총격으로 숨졌다. 미군이 한국 농민과 무슨 감정이 있는가. 전쟁은 그런 것이다. 그렇게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라크 판 노근리는 없는가. 레바논 판 효순이와 미선이는 없는가. 이미 레바논 난민의 수가 60만이 넘었다고 한다. 힘없는 것이 죄다.

56년 전 열여섯 소년이 겪은 한국전쟁의 기억은 먹고 살기위해 농촌에서 손재봉틀과 바꾼 보리쌀 한 말을 등에 지고 지금의 말죽거리 신작로를 따라 서울로 올라오다가 소리 없이 야산을 타고 넘어 온 미 공군 ‘무스탕’ 전투기의 기총소사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피난민의 처참한 시체였다.

죄 없는 피난민의 죽음을 조종사가 알기나 하겠는가. 논두렁에 머리를 박은 채 엎드렸던 16세 소년의 기억은 70이 되어도 생생하다. 전쟁은 이 땅에서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전쟁은 강자의 손을 들어 준다. 강자는 누구인가. 미국인가. 일본인가. 이스라엘인가. 러시아인가. 중국인가. 막강 한국군은 강자인가. 일당백의 인민군은 강자인가. 세상을 벌컥 뒤집어 놓은 미사일 실험을 한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수 있는가.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미사일 실험을 했는가. 개에게 쫓긴 고양이가 이빨을 들어내고 발톱을 새우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바로 그것이다. 막말로 마지막 기를 쓰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는 파산직전인데 미국의 경제제제는 안 풀린다. 북한은 아니라고 하는데 한사코 위조달러를 만들었다고 한다. 증거를 대라고 해도 안 댄다. 일본은 북한이 마약을 만들어 수출한다고 한다. 먹을 식량도 없다. 손들고 투항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은 체제가 다르다. 세계는 소련의 체제를 인정했다. 카스트로의 쿠바도 인정했다. 북한은 유엔회원국이다. 솔직하자. 미국이나 일본이 북한에게 요구하는 조건 없는 백기투항이 아닌가. 엎드려 빌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살려 준다는 것이 아닌가. 과연 살려 줄 것인가.

일본은 선제공격을 열나게 떠들어 댄다. 북한을 공격하라는 것이다. 가정해 보자. 선제공격을 당한 북한은 어쩔 것인가. 가만히 앉아서 ‘나 잡아 잡수’ 할 것인가.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발버둥이라도 쳐 볼 것이 아닌가. 참새가 죽어도 짹 한다고 하지 않던가.

북한의 미사일은 미국으로 향할 것인가. 대포동이 그런 성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상에 다 알려진 비밀인 한 반도에 미군 미사일 기지를 공격할 것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한 반도가 사라진다. 결론은 그것이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어야 된다는 절체절명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너무 소박하게 설명을 했는가. 몇 명이 죽는다는 숫자는 의미가 없다. 그냥 한 방에 한 반도가 사라진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한반도는 그렇게 사라져도 괜찮은 땅인가. 절대로 안 된다.

가증스러운 일본을 보자. 일본은 지금 세계여론을 부채질 한다. 미국 곁에 기생처럼 붙어서 온갖 아양을 떨며 한 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그 결과로 떨어지는 열매를 주워 먹겠다는 것이다. 열매란 무엇인가. 군비증강이다. 군사대국이다. 오매불망 잊지 못하는 보수 강대국의 꿈이며 군국주의 부활이다.

선제공격으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일본은 손도 안대고 코를 푼다. 미국이 코를 풀어줄 것으로 믿는다. 한국전쟁 때 패전으로 망가진 일본경제를 살려 낸 한국전쟁의 단 꿈을 다시 잊지 못하는 것이다.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몇조가 되는가.

일본도 잘못 판단한다. 미국이 세계 최대 강국이며 영향력 또한 제일이라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미국이 세계질서의 판단기준인가. 아니다. 다만 강국일 뿐이다. 전 세계가 공감하고 인정하는 정의 앞에서만 미국의 힘은 존경받는다. 월남전에서도 미국은 패했다.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은 승리자인가. 왜 세계여론은 부시를 가장 위험한 인물로 꼽는가.

일본은 미국을 하늘처럼 믿지만 미국 또한 남이긴 마찬가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버섯구름은 사필귀정이라 해도 치욕의 미국 선물이다. 오늘에는 중국도 있고 러시아도 있다. 미국이 세계질서의 판단 기준인가. 미국은 월남전에서도 패했고 이락에서도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결코 일본의 天照大神(아마데라스 오미가미)가 아니다.

북한은 왜 이리도 철부진가. 점쟁이는 아니더라도 그 정도의 예측도 못하는 철부지인가. 북한의 경제는 지금 몇 시인가. 부산회담에 참석한 북한 고위관리가 이미 고백하지 않았는가. 한국이 식량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군비로 축적해 둔 옥수수 가루와 밀기울을 인민들에게 나누어 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고백 말이다.

왜 그렇게 사는가. 왜 일을 어렵게 만드는가. 왜 길을 두고 뫼로 가는가. 한국이 요구하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인가.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아닌가. 이산가족의 만남 아닌가. 북한경제의 도움이 되는 금강산 관광이 아니가. 어느 것 하나 손해나는 것이 없는데 왜 초를 친단 말인가.

개성경협사무실 일부철수는 뭔가. 왜 간교한 일본에게 빌미를 준단 말인가. 6자회담이 뭐 그리 어려운가.

흔히들 북한의 외교를 벼랑 끝 외교라고 한다. 몇 번인가 성공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마다 꼴뚜기가 아니다. 누울 자리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 오늘의 상황은 결코 벼랑 끝 외교로 해결이 안 된다. 떨어지면 끝이다. 적당한데서 멈춰야 한다. 장기나 바둑도 같은 수를 계속 두다보면 상대가 수를 빤히 읽는다. 읽어버린 수는 무용지물이다. 새로운 수를 개발해야 되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다.


6.25 전쟁 중에 해외로 도망을 쳐서 동족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까맣게 모르는 인간들이 많다. 이른바 주류의 인간들이다. 오늘의 여론을 주도한다는 이른바 보수 우익들의 사고는 무엇인가. 군사독재 시절 만한마디 못하던 언론들은 왜 그리도 용기가 충천한가. 일본의 선제공격론을 거들거나 묵시적 동조를 하고 있는 인간들은 어느 나라 국민인가. 미국에다 땅 사 놓고 집 사 놓아서 걱정 없다는 자랑인가.

아무리 밉다 해도 반만년 한반도 역사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해 유일하게 제 목소리로 말하는 참여정부에 대한 보수들의 행태는 어떤가. 치사하고 추하다. 국민과 정부를 이간질 시키는 보수언론의 행태는 이제 진절넌덜머리가 난다.

또한 아무리 참여정부가 원수 같아도 민족의 자존과 생존을 생각하는 언론이라면 일본의 선제공격론에 묵시적 동조를 할 수는 없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보수도 우익도 없다. 보수언론도 없다. 한반도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태풍에도 끄떡없는 거대한 느티나무로 한반도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가 할 탓이다.